제목
  한류와 동아시아 문화 심포지엄 개최 결과
부제
  한중일 삼국 대학원생 대토론회
일시
  2012.06.25
작성일
  2012-06-26 오후 12:20:00
조회수
  5477

   
 
 
 
 
 
 
 
 
 
 
 
 
 
 
 
 
 
 
 
 
 
연구소에서는 6월 25일 09:00~14:00 국방회관에서 "한류와 동아시아 문화 - 한중일 삼국 대학원생 대토론회 -" 심포지엄을 개최하였습니다.

여기에 발표 내용 일부와 당일 행사 중에 찍은 사진 몇 장을 올립니다.

I. 연구소장 환영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세미나를 주관하는 사단법인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이재형입니다.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참석하여 성원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저희 연구소는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보장, 경제협력, 문화교류,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통일문제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우리나라와 아시아 지역의 사회발전과 번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순수학술연구기관입니다. 그동안 저희 연구소는 정부 부처의 수주를 받아 정책연구를 수행함은 물론 독도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한국-몽골 국가연합에 대한 세미나 등을 실시해 왔습니다. 또한 3년 전부터는 주한 아시아 국가들 대사를 초청하여 조찬강연회를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한 필리핀, 인도, 라오스, 방글라데시, 베트남 대사의 초청강연을 들었고, 금년에는 주한 미얀마 대사와 인도네시아 대사의 조찬강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한류와 동아시아의 문화-한중일 대학원생 대토론회-‘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 중국,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지역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문화면에서 다양성도 있지만 상호 공통점도 많다고 봅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와 불교, 그리고 유교문화는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전해짐으로써 이들 세 나라는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 나라든 자기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현대감각에 맞게 발전시켜 오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도 고유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지만 한류는 1990년대 이후 중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이제는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에 당 연구소는 한류와 동아시아 삼국 문화의 연관성을 알아보고 이러한 문화의 교류를 통하여 이들 삼국이 상호 협력적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고자 이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중일 세 나라의 대학원생들이 발표와 토론에 참가합니다.

동아시아의 한중일 삼국은 과거의 불편한 역사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아직도 시기와 반목의 늪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이 동아시아는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이 지역이 경제규모도 크고 문화적으로도 세계의 어느 다른 지역보다도 우수한 전통을 견지해 오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야흐로 한중일 삼국은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안보 측면에서도 상호 협력을 통해 가까운 이웃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문화의 교류를 통해 정치적 갈등 요소를 해소하고 상호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상생발전을 도모하는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참신한 시각과 논의로 학술대회를 진행하고자 하오니 발표도 경청하시고 고견도 피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학술대회를 진행할 인사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사회는 한은경 교수가 맡아 주시겠습니다. 한 교수님은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재직하고 계십니다. 학생들의 발표에 앞서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문효진 박사님이 ‘한류의 패러다임 변화와 지속 가능성’이란 주제로 발표를 해 주시겠습니다. 이어서 중국의 림여명 학생, 일본의 마미 히로타니 학생이 발표할 것입니다. 그들의 발표가 끝나면 약 15분 간 휴식한 후에 한국의 임수연 학생이 발표를 계속하고, 바로 세 명의 토론자가 논평을 할 예정입니다. 발표자와 토론자의 소개는 차후 사회자가 해 주실 것입니다. 참석한 모든 분들이 참신한 시각과 논의로 이 학술대회에 동참해 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참고로 오늘의 학술대회를 위해 동북아역사재단의 후원이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참석해 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말씀을 드리고 아울러 모든 분들께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II. 림려명 학생(중국 유학생) 발표문

주제 : 중국에서의 한류현상, 한류와 중국문화의 이해

1. 한류의 기원과 발전과정
한류(韩流)란 최근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는 한국의 대중문화 열풍을 가리키는 말이다. 1999년 11월 베이징 청년보(靑年報)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한국의 대중문화와 연예인에 열광하는 중국의 젊은이들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또한 “갑작스러운 강추위(寒流)”라는 단어와 성조만 다를 뿐 비슷한 발음으로 “韩流”가 통용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리 매김 하였다.
1992년 한중수교이후, 양국은 경제와 문화측면에서 서로 교류를 강화하였다. 1993년 한국드라마 <질투(嫉妒)>가 처음으로 중국에서 방영되었는데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였고 1997년 6월 CCTV에서 방영한 한국드라마 <사랑이 뭐길래(爱情是什么)>의 큰 성공으로 중국에서 한류의 시작을 알렸다. 최고 시청률이 15%대를 돌파했고 외화 가운데 시청률 2위를 기록하였으며, 그 인기는 재방영까지 몰고 갔다. 특히 전통적인 가부장 권위를 일깨워준 '대발이 아버지(이순재)'의 당당한 모습은 '남녀 역차별' 속에 살던 중국의 남성들을 압도했다. <사랑이 뭐길래>에 고무된 중국 남성들 사이에선 아내보다 일찍 직장에서 돌아와 저녁밥을 짓던 평소의 관습을 깨고 바깥에서 놀다 늦게 돌아오는 유행이 일기도 했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드라마 방영으로 조성된 한국에 대한 관심은 가요에도 이어졌다. 1999년 말 클론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듬해 2000년 2월 H.O.T와 NRG 등 한국 가수들이 중국 청소년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으면서 ‘한류’라는 용어가 급속히 전파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의 젊은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음악, 드라마, 패션, 게임, 음식, 헤어스타일 등 대중문화와 한국 인기연예인을 동경하고 추종하며 배우려는 문화현상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한류는 하나의 외국문화로서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이를 반영 하듯 한국의 대중문화열풍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한미(韩迷)' 혹은 '하한주(哈韩族)'라는 용어까지 생겼다. 2002년에 드라마 <가을동화>가 인기를 끈 이후 <보고 또 보고>, <인어아가씨>, <목욕탕 집 남자들>, <명성왕후> 등 드라마가 잇달아 히트하였고 2005년 <대장금>의 방영을 계기로 그 열풍이 최고조에 달했다.

2. 중국 사람들은 왜 한류를 수용하는가?
한류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원인 때문에 중국에서 흥행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 날로 발전하는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중국 본토 드라마 제작의 한계점이다. 1978년 등소평의 대외 개방정책 실시 이후 중국은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고 이에 따라 평균적으로 전체 소득이 증가하였으며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을 지닌 중산층들이 크게 성장했다. 대중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이 충족됨에 따라 레저, 문화 활동에 대한 수요도 증대되었다. 이처럼 대중문화 소비층은 확대되었으나, 이에 걸 맞는 대중문화가 중국에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중국 드라마들은 정부로부터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아 다양한 현실을 효율적으로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주로 방영되는 드라마는 역사극, 비현실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무협 드라마, 경찰들에 관한 수사 극, 공산당의 활약상을 그린 전쟁 드라마 등이다. 가끔 현실 사회를 반영한 드라마가 있다고 해도 반부패나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통제 때문에 드라마 창작에 있어서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현실 사회를 반영하는 깊이에 있어서도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중앙텔레비전방송국은 시청자 확보를 위해 대대적으로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였다.
둘째, 한중간의 문화적 유사성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동일한 유교 문화권으로서 문화 상품의 국가 간 이동 시 문화적 할인율이 매우 낮고 생활양식과 가치관에 유사점이 많다. 문화적 유사성이 많을수록 문화 상품은 호소력 짙게 수용되기 마련이므로 중국 내 한국문화에 대한 수요가 높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한국 문화의 서구적 세련미가 중국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경제적 발전에 따라 중국인들의 가치관이 변화되고 서구 지향적 소비 취향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구 자본주의 가치와 중국이 주도했던 과거 동아시아의 전통적 문화요소를 내면화한 한국드라마가 중국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국드라마는 서구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는 가운데 내용적으로는 유교적 가족 공동체의 조화, 강력한 도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류는 단순한 서구화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통 문화와 서구의 드라마 구성 형식 및 문화내용이 성공적으로 조합하여 동아시아의 정서에 맞게 세련되게 가공되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쉽게 받아 들여 질수 있었고 친밀감을 주었다.
넷째, 한류가 흐르기 이전에 중국에는 ‘일류(日流)’가 불었는데 점차 일본 드라마의 높은 가격을 감당하기 힘들어졌고 만족도가 떨어지자 대안이 필요하였다. 거기다 방송매체는 늘어나 공급해야 할 콘텐츠의 절대량이 증가하였고, 미국 대중문화는 문화적 거리감과 충격이 크므로 공감대를 찾기 쉬운 대중문화에 대한 요구가 생겨났다. 이러한 시점에서 일본드라마보다 낮은 가격에 지속적인 고급 콘텐츠 공급이 가능한데다 문화적 근접성마저 가져 문화적 충격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한국 드라마가 입성을 한 것이다.
다섯째, 한국드라마의 자체 특성 때문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준수한 외모에 배경화면이 아름다우며 드라마 속 극적인 요소들이 중국 시청자들에게 새로움을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동양적인 문화에 서양적인 문화가 적절히 혼재되어 중국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젊은 층들이 추구하는 심미적 요구도 충족시켜주었다.

3. 중국에서의 한류 현황
1) 드라마
1993년 <질투>라는 한국드라마가 처음으로 CCTV에서 방영된 후 <가을동화>, <유리구두> 등 한국드라마들이 연이어 전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대장금>이 방영 당시에는 하루에 1.8억 중국시청자들이 <대장금>을 시청하였다고 한다. 중국CCTV소부뢰(央视索福瑞)에 의한 시장조사에 의하면 2000년에서 2011년까지, CCTV8에서는 총 96편의 한국드라마를 방영하였고, 후난위성(湖南卫视)에서는 49편, 안휘위성, 강수위성, 절강위성 등에서 방영된 한국드라마의 편수도 적지 않았다. 중국에서 수입한 외국드라마에서 30%가 한국드라마이다. 비록 국가광전총국(国家广电总局)에서 규정을 가하고 있지만 한국드라마의 시청률은 항상 다른 드라마보다 높게 나타났고 2011년 저녁 10시에 방영되는 드라마 중 상위 15개 드라마 중에는 한국드라마가 47%를 차지하였다. 2012년 6월 8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가별 한류 콘텐츠 수출동향과 한국 상품 소비인식 분석”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한국 콘텐츠의 중국 수출은 꾸준히 증가해왔으며, K-pop이 붐을 나타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2010년까지 연평균 수출증가율은 약 35%에 이르고 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한국 드라마의 중국 수출이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가 2009년 이후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 것이다. 2005년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방송되고 강력한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켰지만 이후에 한국드라마의 하락세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원인을 살펴보자면, 우선 중국정부의 외국 콘텐츠 규제정책과 관련이 있다. 중국 정부는 2002년 ‘수입드라마 입안 강화에 대한 국가광전총국의 통지’, 2004년에는 ‘해외 TV프로그램 수입 및 방송 관리 규정’을 통해 중국의 각 방송사는 수입 외국 드라마를 해당 채널의 하루 드라마 방송시간의 25%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19시부터 22시까지 황금시간대에는 어떤 외국 드라마도 방영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한류가 <대장금>의 방영으로 최고점에 달하자 2006년 8월에는 ‘드라마 수입. 합작. 방영에 대한 강력한 관리 통지’ 규정을 제정하여 외국 드라마 수입과 방영에서 동일 국가나 지역의 드라마가 중복되지 않도록 국적별로 심의통과 편수를 조절하기 시작하면서 외국 드라마에 대한 수입다변화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광전총국은 CCTV, 후난(湖南)위성방송, 안후이(安徽)위성방송 등에 미국과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가의 드라마를 방영하도록 안배했다. 더불어 중국 국민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반한감정이 한국 문화콘텐츠 소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CD 및 DVD의 불법복제 및 불법 인터넷 다운로드 등도 한몫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09년 들어 중국은 물론 대만이나 홍콩에서도 한국 방송콘텐츠의 상승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쾌걸춘향>, , <소문난 칠공주>등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면서 주연 한채영, 이태란, 최정원, 박해진 등의 인기도가 상승하였다.

2012년 2월 9일 국가광전총국은 TV 방송국에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외국 영화·드라마 관리 강화 방안’을 통지했다. 이에 따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는 외국 드라마 방영이 제한된다. 또 외국 드라마 방영 횟수가 50부 이내로 제한되고, 당일 드라마 총 방영시간 중 외국 드라마 방영시간은 25%를 넘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는 대상은 한국 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져서 최근에는 다양한 한국 드라마가 대다수 TV 방송국에서 방영돼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 드라마·영화 방영이 제한되면 당장 한국 드라마 상영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12년 6월 후난위성TV 프로그램 편성표를 보면 주중에는 한국드라마를 방영하지 않고 주말에만 오후 2시 30분부터 5시 05분까지 약 2시간 30분 동안 한국드라마 <마녀유희>를 방영하고 있다. 또한 후난위성을 제외하고 다른 채널에서는 거의 한국드라마를 방영하지 않고 있고 한국드라마를 가장 많이 방영하던 CCTV8에서도 요즘 한국드라마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2012년 광전총국에서 발표한 1분기 해외영상물 수입 허가 목록을 보면 18개 수입 드라마 중에서 태국드라마 12편, 홍콩과 대만 드라마 총 6편으로 한국드라마는 없었다. 하지만 현시대와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시점에서 사람들은 굳이 TV로 드라마를 시청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일상생활이 바쁜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을 이용하여 좋아하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을 온라인상으로나 다운받아 보는 경향이 많다. 그리고 중국에서 아직 인터넷에 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드라마 소비는 인터넷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중국의 인터넷TV사이트인 PPTV는 한국문화원과 KBS, MBC 프로그램의 방송 독점권과 SBS 프로그램에 대한 부분 독점권을 체결하였다. 한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바로 PPTV에 중국어 자막까지 완벽하게 구현되어 올라오게 된다. 따라서 중국에서도 한국드라마에 관한 정보를 거의 동시에 접하게 된다.

PPTV에서 실시간 인기 드라마 TOP10에 4위에 한국 드라마 <닥터 진>, 8위에 <아이두아이두>가 차지하였다. 그리고 같은 시간 대 다른 대표적인 중국 인터넷TV 제공 사이트 Youku(优酷网)를 검색한 결과 2012년 5월 TOP10 드라마 속 7위에 한국드라마 <망설이지마(别再犹豫)>, 9위에 <옥탑방 왕세자(屋塔房王世子)>가 차지하였다. 여기서 보다시피 한국드라마가 현재 중국에서 <대장금>이 방영되던 때처럼 큰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광전총국에서 규제를 가하는 와중에도 그 인기는 계속 지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K-POP
이전의 한류 열풍은 <대장금> 등 드라마가 주도하였다면 현재는 K-pop을 중심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중국에서 K-pop 1세대는 클론, HOT, NRG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사장은 중국 K-pop시장의 개척을 위하여 2002~2003년 사이에 중국에서 70억 원을 들여서 무료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였다. 그 덕분에 한국 가요는 젊은 세대에게 널리 알려지고 이전에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 장르에 열광하게 된다. 2003년 중국에서 ‘신우치(新舞器)’라는 보이그룹이 데뷔를 하였는데 그들은 중국 현지 10대들을 캐스팅해서 한국으로 데려와 춤, 노래, 스타일을 가르친 후 다시 중국에 데뷔시킨 최초의 토착인 수출 ‘아이돌 스타’이다. 그들의 타이틀곡인 ‘이 느낌이야’는 방송에 소개되자마자 중국 인기가요 차트 6위에 올랐고 많은 현지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신우치’의 예에서 알 수 있다 싶이 지금 한류는 콘텐츠를 단순히 아시아 대중문화시장에 파는 수준을 넘어서 아시아 각국의 문화적 조건에 맞게 ‘토착화’하고 ‘현지화’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한류의 ‘현지화’전략은 현지인을 한류 식 스타로 재가공하는 것과 한국의 스타들을 제작단계부터 현지화 하는 것, 그리고 특정한 문화콘텐츠의 제작자본과 유통을 다국적화 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 댄스 그룹들을 중국에 진출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소요되고 언어적 문화적 공감대의 부족으로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10대들을 키워 댄스그룹을 만들면 경제적으로 절감효과를 가져오고, 정서적 유대감을 높을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러한 예로 한국 아이돌 가수 슈퍼주니어를 들 수 있는데 전 슈퍼주니어 멤버 한경은 중국에서 오디션을 보고 합류를 한 중국멤버이다. 전에 중국에서 활동을 하지 않았을 때부터 한경은 한국 아이돌 그룹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이미 유명세를 치렀다. 2008년 한경을 리더로 한 슈퍼주니어-M (Super Junior-M)이라는 중국 진출을 위한 슈퍼주니어 유닛이 결성되었고 그들이 당해에 2008 CCTV-MTV 음악성전 최고 인기 그룹 상을 받은 데는 한경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현재 한경은 슈퍼주니어에서 탈퇴하여 혼자 중국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데뷔한 가수인데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가요가 중화권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에서는 그룹을 만들 때 세계화와 중국시장을 고려해 중국 멤버들을 일부러 합류시킨다. 에프엑스(f(x))의 빅토리아와 엠버, 그리고 미쓰에이(Miss A)의 지아, 페이는 중국인 멤버들이고, 원더걸스(Wonder Girls)에도 새로운 멤버 교체에서 홍콩 출신 교포인 혜림을 새 멤버로 발탁하였다. 실제로 중국 멤버들이 합류되어 있는 그룹은 중국에서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 SM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로운 신인그룹을 선보였는데 12명인 보이그룹 EOX는 EOX-K (한국인 6명)와 EOX-M (중국인 4명, 한국인 2명)으로 나뉘어져 한국과 중국에서 활동한다. EOX-K와 EOX-M은 같은 날, 같은 시각 동일한 곡을 한국어와 중국어로 각각 발표하고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활동하는 획기적인 전략으로 데뷔하였다. EOX-M은 현재 ‘MAMA' 뮤직비디오로 중국 음악 동영상 전문사이트 ‘인위에타이(音悦台)’의 중국 뮤직비디오 부문 주간 차트 (4월 2일~5월 13일)에서 6주 연속 정상에 올랐고 ’HISTORY'뮤직비디오 역시 동일 차트에서 10주 연속(3월 5일~5월 13일) TOP5에 랭크되어, 중국에서의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이러한 연속적인 다국적 그룹의 성공은 앞으로도 이러한 그룹들이 더 많이 생길 것으로 보여 진다.
K-pop의 인기와 더불어 음악 콘텐츠 수출 금액은 2006년 85만 달러에서 2010년 약 363만 달러로 4배가량의 수출증가를 나태내고 있다. K-pop은 이제 중국에서 하나의 음악장르로 정착되었으며, K-pop 팬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한국의 대중음악을 접하고 있다. 대표적인 중국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百度,www. baidu. com)에서는 한류라는 키워드로 MP3 음악 파일을 검색하면 최신 한국 음악들을 쉽게 다운받을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은 저작권 문제인데 중국의 대부분 인터넷 사이트들은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고도 여러 가지 콘텐츠들을 마음대로 다운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영민 SM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만약 중국이 음반 시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디지털 음원 시장으로 넘어간다면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K-pop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고 해외 팬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무대 위에서의 군무와 춤동작들이다. 아이돌 그룹 열풍을 불러온 원더걸스의 처음 시작이 노래보다 춤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면 이해가 쉽다. 감각적인 음악과 멋진 무대 퍼포먼스, 그리고 화려한 뮤직비디오가 더해지면 K-pop 열풍이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소수의 한국 가수나 그룹들이 인기를 얻었지만, 최근 들어 포미닛, 에프엑스, 티아라 등 다양한 가수와 그룹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걸 그룹들이 대세인 K-pop의 영향을 받아 중국에서도 2009년 12월 자국 내 첫 번째 걸 그룹인 Idol girls(爱朵女孩)를 데뷔시켰다. 그들의 소속사인 베이징Idol문화(北京爱朵文化)는 처음으로 ‘연습생’ 개념을 도입시킨 엔터테인먼트회사로서 1년간 Idol girls를 교육시켰으며, 연예인관리에 있어서 일본과 한국의 엔터테인먼트회사들을 따라 배워 중국에서의 시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Idol girls는 한국 걸 그룹 소녀시대를 너무 모방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멤버 인수도 9명인데다가 스틸 샷마다 소녀시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컨셉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방은 오히려 K-pop이 이미 중국의 새로운 음악 장르로 자리 잡았음을 말해주는 가장 좋은 증거이다.

3) 한국어. 관광. 화장품. 성형
중국의 한류는 드라마와 가요의 영향을 중심으로 이젠 생활 곳곳에서 중국 사람들의 가치변화를 일으켰다. 한류의 인기에 따라 전 세계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보도에 의하면 2007년까지 중국에 한국어과가 개설되어 있는 대학은 58개교였는데 이는 2005년도의 38개교에 비해 대폭 증가한 것으로 중국에서의 한국어 학습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인접국인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2011년 10월 국경절 연휴 때 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은 7만 명, 당시 이들은 1인당 260만 원을 썼는데 이는 일본인들보다 대략 1.5배 더 사용했다. 서울 구경의 필수 코스로 명동에는 항상 한국인보다 관광을 온 외국인이 더 많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 화장품이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데 한국에서 사면 중국에서 사는 것보다 3배 정도 저렴하기 때문에 명동의 로드샵 화장품 가게들에서 화장품을 세트로 대량 구입해 간다. 또한 한국 성형 문화에 대한 동경은 자연스레 중국인들을 한국의 강남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011년 10월 국경절을 맞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상당수는 20대 전후의 젊은 여성들이다. 그들의 행선지는 강남의 3대 성형 성지로 불리는 압구정동, 신사동, 강남역 등에 소재한 성형외과이다. 강남의 성형외과들이 요즘 들어 아예 중국어 구사가 가능한 직원을 카운터에 배치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근에 한국 대중문화의 급속한 확산에 대해 중국, 일본, 대만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경계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나아가 한류에 대한 배타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한류에 대한 역작용을 대강 ‘역한류’, ‘혐한류’, ‘항한류’ 이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역한류’는 한류 수용국의 문화가 거꾸로 한국으로 역류해오는 현상으로 특정 여론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문화이동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혐한류’는 한류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논리보다는 감정적으로 한류를 훼손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비해 ‘항한류’는 한류에 의해 잠식당한 자국의 문화영역을 보존하기 위해 한류에 대항하자는 움직임으로 타당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반한류’라는 말도 쓰이고 있는데 ‘혐한류’와 ‘항한류’의 의미를 합친 개념으로 한류를 반대하는데 감정적으로 혐오하기만 하는 경우와 논리적으로 대항하는 경우를 합쳐 이르는 말이다. 현재 중국의 실정에서 볼 때 중국은 '항한류'보다 '반한류'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중국에서의 ‘반한류’의 원인으로는 첫째, ‘양국 간 정치, 사회적 측면’, 둘째, ‘자국 문화산업 보호 측면’, 셋째, ‘드라마 속 역사관 문제’, 넷째, ‘쌍방향 교류가 아닌 일방적인 한류의 전파’ 등 측면에서 교려해 볼 수 있다.
첫째,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 사실 ‘반한류’ 이전에 중국과 한국 두 나라의 네티즌들은 사이버공간에서 양국 역사에 대하여 서로 공방을 펼쳐 온지는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양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만큼 공식화된 논쟁은 아니어서 문제화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2005년 중국에서 <대장금>의 히트로 한류가 최고조에 이른 당시 한국이 강릉단오제를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록한 사건이 중국 사람들이 ‘반한류’ 감정을 갖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중 일어난 중국인 유학생 폭력 사태에 한국 정부가 법대로 해결하겠다고 발표한 후 ‘반한류’에 대한 사태는 더욱 격화되었다. 중국 네티즌들은 “한국 물건을 사지 말고 한국인과 만나지도 말자!”, “중국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도 모두 몰아내야 한다.”며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며 ‘반한류’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둘째, 중국에서 방영되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 문화산업으로 인한 중국 자국문화산업의 침체위기에 대한 우려이다. 과거 중국은 역사적으로 세계의 중심국가라는 중화사상에 근거하여 국가적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였다. 실제 중국의 유교사상이 한, 중, 일은 물론 동아시아 대다수 국가를 유교문화권으로 묶을 정도로 문명사적 위치도 높았기 때문에, 외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일에도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만 받아들이자는 중체서용의 견지에서 수용해 왔다. 이러한 입장은 한류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실제로 2002년 중국에서 수입해 방영한 한국드라마는 모두 67편으로 재방송까지 포함한 한국드라마 방영 횟수는 총 316차례이다. 이는 1년 중 한국 드라마가 10개월 이상 매일 방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4년에는 중국에서 방영한 수입 드라마는 모두 649편이었으며 그 중에서 한국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16.5%로 무려 107편에 달했다. 이에 한국의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중국 젊은이들에 대한 우려가 기자의 기사 및 오피니언리더의 기고 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정부는 자국 문화산업 보호 및 외래문화에 대한 경계심으로 인해 한류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셋째, 드라마 속 역사관 문제이다. 2008년 <중국청년보>가 중국 대중이 가장 싫어하는 드라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타났다. 한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었던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대중들이 싫어하는 드라마에 선정된 것이다. 또한 2011년 9월 중국 언론 매체인 <환구망>에서 자국의 넷 이용자 6800명을 상대로 ‘중국인이 한국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49.9%가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답하였고, 그 요인으로는 49.9%가 ‘한국식 역사관’을 24.4%가 ‘중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 21.3%는 ‘한미 동맹’을 선택했다. <대장금>에서는 중국인들이 발명한 침구술을 한국인들이 발명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우리의 아이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자연적으로 침구술이 한국인이 발명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역사에 대한 오류를 오도할 수 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중국 동북공정을 겨누어 제작한 <주몽>, <연개소문>, <태왕사신기>, <대조영> 등 한국의 드라마가 중국의 불만을 자아냈다.
넷째, 중국에선 한류가 중국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한국에선 기껏해야 ‘중국어학습’ 바람만 일고 있지 ‘한풍(汉风)’은 한국에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수요의 측면서도 다른 점이 있는데 중국 사람들은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이 여유로워지면서 문화소비의 수요로 한국문화를 소비하는 반면 한국 사람들은 취업 등 생계를 위해서 중국어를 공부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양국의 문화는 서로 상호 교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 일방적으로 한국문화만 들어오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화의 유입은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해서 중국화폐가 일방적으로 한국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한다. 중국 내 한국 드라마의 수입가격 변동 현황은 다음과 같다. 2000년도 중국 내 한국 드라마의 수입가격은 회당 1,000~2,000달러 수준이었으나 2005년 초 한국 드라마 평균 수입가격은 회당 3,000달러 정도로 올랐다. 그리고 2005년 말 한국 드라마의 수입가격은 회당 8,000~20,000달러 수준으로 <대장금> 수입 전과 비교해 평균 8배가 상승하였다. 중국의 한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는 2005년 말 CCTV는 16부작인 <풀하우스> 방송권을 70부작인 <대장금>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수입했다고 한다.

한류의 일방적인 중국 내 수입은 연예인들의 활동에서도 볼 수 있다. 한국 가수나 배우들은 지속적으로 중화권으로 진출하는 데 반해 중화권 엔터테이너의 한국 진출이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몇 년 전에는 중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장나라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돈이 떨어질 만하면 중국에 간다”는 발언이 논란이 되어 중국 네티즌들의 분노를 일으킨 적이 있다. 중국의 반한감정은 전반적으로 역사적, 정치. 사회적 갈등에 직접적 원인이 있지만, 실제 표출되는 것은 한류 스타 혹은 한류 자체에 대한 혐오감 혹은 저항감이다. 최근 중국 사이트들에서는 한국 여자연예인들 성 접대에 관한 기사들이 화두가 되고 있고 한국여자연예인들의 성적 파문 동영상이라는 타이틀의 동영상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한국여자연예인들의 성형전후 사진은 예전부터 온라인에서 재미거리로 제공되었지만 요즘은 중국에서 활동 중인 탤런트 이다해가 그 표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반한감정이 중국에 내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내에서의 반한 감정은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실제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현재 한류는 최고조의 시기처럼 중국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한국 상품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국드라마를 즐겨보며, 한류를 이어가고 있다. 즉 한류에 대한 호감과 반감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이 계속해서 중국인의 호응을 얻고 있다.

5. 한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한국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기 프로그램의 위상에 맞지 않게 다른 나라 문화를 비하하는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한 방송분에서 여성출연자가 이란의 전통복장을 하고 손에는 총을 들고 등장하였는데 사회자가 “이분은 이란의 최고 미녀 기상캐스터이다.”라고 소개하였다. 방송은 원래 이를 통해 시청자들로부터 웃음을 자아내려는 의도였지만 현지 이란 시청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 영상이 YouTube를 통해 전파되면서 한 이란 시청자는 “내가 좋아하는 한국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우리나라를 말할 줄은 몰랐다. 첫째,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둘째, 우리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우리는 사막에서 살지 않는다.”라고 댓글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에 대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렇게 유명한 방송에서 자신들을 비하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 영상은 다른 문화권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어 더 많은 댓글이 이어졌고 Facebook을 통하여 빠르게 전파되었다. 이에 SBS측은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지만 네티즌들은 “이미 남겨진 상처가 어떻게 사과를 한다고 없던 일로 되는가.”라고 지적하였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의 문화산업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 나라에 전파되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 한국만의 문화가 아니다. 한류가 다른 나라에 수용됨으로써 현지인들은 자국 문화와 한류문화를 함께 융합시켜 받아들이게 된다. 한류의 성공과 더불어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급부상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한국적인 것이 최고이다’라는 마인드가 자리 잡혀가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상대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게 된다. 하지만 한류가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세계적인 문화가 되려면 결코 한국적인 것만 고집해서는 안 되고 이러한 상황에서 한류는 그 대상국이 어디든 양국 문화는 더욱이 상호 이해와 존중의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 문화콘텐츠 제작에 있어서 한국만의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마인드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여야 한다.

특히 중국일 경우, 중국인들의 반한감정은 한국문화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한국문화콘텐츠를 좋아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인접국으로써 세계 다른 나라들보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많다 보니 역사적, 정치. 사회적으로 국가 간 오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를 불러오는 요소들이 한국 문화콘텐츠에 담겨져 중국 시청자들이 한국 문화를 수용할 때 문화적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한류의 전파와 한중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는 이벤트성 행사보다는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한 양국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 문화콘텐츠 제작할 때에도 중국에 수출을 예상하고 있다면 중국인들의 오해 소지를 되도록 피해서 중립적인 시각으로 제작하는 것이 좋은 대안책이라고 생각한다.

한류의 일방적이 문화 흐름은 중국의 반감을 불식시키고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정서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양국의 문화 쌍방향 교류가 필요하다. 중국의 한국 문화콘텐츠 수입에 대한 규제도 이러한 점에서 제기된 것이다. 한국 문화콘텐츠의 정당한 수출을 바라는 점에서 그 대가로 중국의 영상물도 어느 정도 수입을 함으로써 중국 시청자들에게 한류가 중국문화의 침략자라는 인식보다 동반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중국 모두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한류에 관한 기사를 다룰 때 중국 언론은 너무 편파적, 혹은 자극적인 기사를 피하고, 한국 언론은 '한류가 중국 대륙을 공습하다’ 혹은 ‘한국 문화의 아시아 제패’ 등 군사적이고 자극적인 용어의 사용을 지양하는 등, 절제되고 순화된 용어사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기사들은 의도하지 않은 네티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결국 한류 발전과 양국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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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경 외 3명 (2010), 『한류 포에버: 중국. 대만 편』,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III. 마미 히로타니 학생(일본 유학생) 발표문

주제: 한일 양국 문화의 유사성으로 살펴본 한류의 인기 비결

1. 서론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한국 대중문화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에서의 한류는 2003년 ‘겨울연가’붐부터 시작했고 이제는 일본 음악・영화 장르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2012년 현재 일본 대형 렌탈샵에서는 전체 상품의 약 4분의1이상이 한류 상품이다. 이런 현상에서 알 수 있듯이 한류는 일본의 소수 마니아 사이에서만 유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일본인 사이에서도 유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붐의 이유에 대해서 ‘문화적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공통점이나 유사성이 있을 때 그것에 친근감이나 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외국 문화를 받아들일 때 자국 문화와 아주 다른 문화일 경우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어렵다. 외국 문화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정착되려면 어느 정도 자국 문화와 공통점이나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야 쉽게 정착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 김치는 맵고 시기 때문에 일본인들 입에 안 맞아서 그대로는 먹기 힘들지만 발효를 억제하고 달콤한 맛으로 만든 김치는 많은 일본인들이 좋아한다. 비슷한 논의로 이시이는‘문화 유입의 요인’의 하나로 ‘문화적 유사성’을 지적했다. 특히 대중문화에 관해서 ‘드라마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일상적으로 시청하는 것이며 프로그램 속에도 일상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내용의 문화적 유사성의 중요성이 높다’고 한다.
물론 ‘문화의 유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에서의 한류 붐을 논할 수는 없다. 다른 이유로는 한국 콘텐츠가 저가였기 때문이라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그러나 대량의 콘텐츠를 수입해도 시청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붐’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의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므로, 한일 문화의 유사성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본고의 목적은 일본에서의 한류 붐에 대해서 그 원인으로 생각되는 한일 문화의 유사성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지적을 할 수 있겠지만 특히 ‘한국 드라마와 K-POP의 어떤 점이 일본 문화와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왜 공감을 자아내고 인기를 끌었는지’에 대해서 검토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일본에서의 한국 대중문화 유입이나 한류에 대한 단행본, 논문, 신문기사를 주된 분석 대상으로 한다. 2절에서는 2003년의 ‘겨울연가’이전의 한국 대중문화의 유입에 대해서 정리한다. 3절에서는 ‘겨울연가’이후의 한국 대중문화의 유입과 수용 배경에 대해서 ‘한국 드라마’와 ‘K-POP’으로 나눠서 각각 정리한다. 수용 배경 분석은 한일 문화의 유사성이라는 관점에서 한류가 왜 공감・인기를 끌었는지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4절에서 전체 내용을 총괄하며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기술한다.

2. ‘겨울연가’이전의 한국 대중문화 유입
일본에서의 한류 붐은 ‘겨울연가’가 방송된 2003년부터라고 정의했지만, 그 이전 단계의 한국 대중문화 유입에 대해서 확인하는 것을 통해 일본 사회에서의 한류 붐의 위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절에서는 1998년 한국에서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계기로 한일간 문화 교류가 활성화된 것을 근거로, 첫째로 1998년 이전의 한국 대중문화 유입에 대해서 정리한다. 둘째로 1998년 이후부터 한류 붐이 일어나는 2003년 전까지의 한국 대중문화 유입에 대해서 정리한다.

2-1.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는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무관심한 태도를 계속 취해 왔다. 이 태도가 변화하며 일본인들이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였다. 이 시기부터 일본에서 ‘국제화론’이나 ‘이문화론’이 유행하고 아시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한국 트로트가 인기를 끌어 조용필, 계은숙, 김연자 등 한국 트로트 가수들이 일본에서 데뷔했다. 조용필은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큰 히트를 쳤고 1987년에는 일본의 국민 가요 프로그램인 ‘가요 홍백전(紅白歌合戦)’에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출연했다. 김연자는 1977년부터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1988년에 ‘아침의 나라’로 재데뷔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는 일본에 있었던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완화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이것은 1981년 서울올림픽 개최 결정, 1987년 민주화 선언 등 한국 국내의 상황과 1991년에 냉전 체제 붕괴라는 세계 정세의 변화, 1980년대부터 있었던 일본 젊은이들의 아시아 지향 등의 배경에서였다. 이 시기 일본의 많은 대중 매체에서 한국 문화를 취재하였고, 주로 젊은 일본 여성들이 한국을 방문하기 시작하였으며, ‘바람불어 좋은날’, ‘바보선언’, ‘씨받이’ 같은 한국영화가 일본에서도 상영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2-2.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1998년에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 개방이 결정되고 2002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면서 한일 양국간에 우호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 때 일본 대중 매체는 한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그 범위는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다방면에 걸쳤다.
먼저 영화에 있어서 2000년에 일본에서 공개된 ‘쉬리’의 흥행을 계기로 한국영화 붐이 일어났다. 그 후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엽기적인 그녀’ 등의 작품들이 잇따라 개봉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도 위성방송(BS)에서 2002년경부터 ‘가을동화’ ‘이브의 모든 것’ 등이 방송되며 점차 시청자가 늘었다. 음악에 있어서는 2001년에 일본에서 데뷔한 BoA가 2002년에 발표한 4번째 싱글 ‘LISTEN TO MY HEART’로 주목을 모으고 같은 해 ‘가요 홍백전’에 출연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외에도 잡지에 한국 특집 기사가 실리거나 한국에서 촬영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방송되어 한국여행이나 한국요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또한 일본의 국민 아이돌 SMAP의 멤버가 한국어로 진행하는 ‘초난강’이라는 프로그램도 큰 화제를 모았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일본인들도 늘어났다.

3. ‘겨울연가’ 이후의 한국 대중문화 유입 및 수용 배경
지금까지‘겨울연가’이전의 일본에서의 한국 대중문화 유입에 대해서 살펴봤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일본 사회에서의 한류 붐은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절에서는 ‘겨울연가’ 이후의 한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한류 붐이 시작된 이후 일본에서는 더욱 한국 대중문화가 널리 알려졌는데 그 중 특히 한국 드라마와 K-POP이 주된 한류 상품이었다. 따라서 3절에서는 첫째 한국 드라마에 대해서, 둘째 K-POP에 대해서 그 유입 과정과 수용 배경에 대해서 정리・분석하고자 한다.

3-1. 한국 드라마
3-1-1. 일본에서 소개된 주요 한국 드라마
2003년에 ‘겨울연가’가 일본에 소개된 것을 계기로 한류 붐이 일기 시작했다. ‘겨울연가’는 2003년 4월에 NHK BS2(위성방송)에서 방송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같은 해 12월 NHK BS2에서 재방송되었다. 지상파에서도 방송해달라는 팬들의 요청으로 인해 2004년 4월에는 NHK 종합TV를 통해 또 다시 방송되어 2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NHK BS2에서 네 번째 방송되었으며, 노컷(no cut)으로 방송되었다. 이 ‘겨울연가’붐은 일본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2004년의 히트 상품 1위는 ‘한류’가 선정되었고, 유행어대상에서도 ‘겨울연가(후유소나)’가 탑10에 진입하였다. 이후 ‘아름다운 날들’, ‘호텔리어’, ‘천국의 계단’, ‘올인’ 등 한국 드라마의 일본 진출이 속속 이루어져 호평을 받았다.
2005년에는 ‘대장금’이 큰 성공을 거두어 한국 사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후 ‘주몽’, ‘이산’ 등이 잇따라 인기를 끌었다. 2009년에 방송된 ‘이산’은 ‘대장금’을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였고, 일본에서 한국 사극이 정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2012년 5월 현재 일본 주요 방송국의 BS(위성)방송에서는 한국 현대 드라마와 사극이 매주 각각 1편 이상씩 방송되고 있으며 현대 드라마뿐만 아니라 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더하면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3-1-2. 수용 배경
수용 배경에 대해서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한국 드라마를 누가 소비했는가에 대해서 밝히고자 한다. 한국 드라마의 주된 소비자는 ‘배용준(겨울연가 주역)팬=아줌마’라고 할 정도로 주로 40대 이상의 중년 여성들이었으며, 그 외의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겨울연가’이후 ‘대장금’을 계기로 중년 이상의 남성 팬들도 증가하였다. 다음으로 한국 드라마의 특징을 정리하여 인기 요인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의 한류에 관한 문헌에 따르면 일본에서 소개된 ‘한국 드라마의 세계’는 ‘옛날의 좋았던 일본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한국 드라마에 공감이나 향수를 느낀 것이 인기의 이유라는 지적을 다수 찾을 수 있었다. 그 유사한 특징을 구체적으로 4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가족(공동체)의 사랑과 유대’이다.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가족애와 유대의 이야기’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한 가족에 대한 애정이나 책임감, 조상을 잘 모시는 태도 등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는 호의적인 반응을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드라마에서는 (옛날 일본처럼) 가족들이 다 같이 밥을 먹는 장면이 많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가족끼리 서로 할 말 다 하니까 시원하다’ 등 가족애나 유대에 대한 감상이 많았다. 일본에서는 무연사회(유대 없는 사회)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가족이나 공동체의 유대가 희박해져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옛날 일본 모습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랑과 유대가 강한 가족의 모습에 호감, 향수, 부러움을 느끼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둘째는 ‘예의와 배려심’이다. 드라마 속에서 윗사람한테는 존댓말을 사용하는 장면이나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의 장면들에 대해 호감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 배우들은 등을 피고 똑바로 상대방의 눈을 보고 이야기한다’‘자기 감정을 생각하기 보다 상대를 배려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좋다’라는 감상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널리 퍼지면서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그것이 과도해진 결과 옛날에 비하면 이웃들과 인사도 안 하게 되었고 자기 중심적이고 남의 일에 무관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 드라마는 일본인들이 잃어버린 ‘예의・배려심’ 같은 좋은 것들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셋째로 ‘남자다움’이다. 한국 드라마 속에서 일본인들에게 인상적인 장면인 남자가 여자를 업어주는 장면이나 ‘오빠’라는 말로 연상되는 남성상, 즉 여성을 지켜주고 여성이 의지할 수 있는 ‘남자다운’ 모습에 호감을 느낀다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한국 배우들이 체격도 좋고, 얼굴도 잘 생기고, 더 따뜻한 심성을 지녔다’라는 팬들의 말을 통해서 ‘남자다움’에 대한 동경이 한국 드라마의 인기의 이유인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남성상에 대해서 ‘옛날(쇼와 시대)의 남성상’이라는 인식이 있다. 현대 젊은이들에게는 쟈니즈 사무소의 연예인 같은 중성적이고 꽃미남스타일의 남성들이 인기를 끌고있는데 중년여성을 중심으로 한국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종래의 남자다움이 지지를 얻어 인기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실함’이다. ‘겨울연가’의 주인공들은 ‘성실하고 청초한 역할을 맡았는데 바람직한 인격으로 (팬들에 눈에) 보인 것 같다’라는 분석이 있다. 또한 ‘대장금’의 주인공인 장금의 모습은 일에 대한 성실함과 열심히 하는 태도를 본 중년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공감을 얻은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인론의 고전인 ‘국화와 칼’에서는 ‘성실함’이 일본인들의 중요한 도덕이라고 소개되었는데, 최근의 경쟁 사회 속에서는 ‘너무 성실하기만 해도 안 좋고 어느 정도 처세술을 알아야 한다’라는 인식을 가지는 사람들도 증가했다. 이렇게 성실함이 쇠퇴한 현대 일본에서 성실함이 중요한 도덕이었던 시대를 살아온 중년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한국 드라마 속에서 볼 수 있는 성실함의 미덕에 공감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 드라마가 지닌 4 가지 특징은 모두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옛날의 좋았던 일본의 지역성(locality)’과 한국의 지역성이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분석에 대한 문제점도 몇 가지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보도나 연구에서 ‘옛날의 좋았던 일본’과 한국 드라마의 유사성이 지적된 것을 생각하면 일본에서의 한국 드라마 붐은 ‘옛날의 좋았던 일본의 지역성’과 한국의 지역성이 유사했기 때문에 그 시대를 체험한 중년 이상의 세대를 중심으로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2. K-POP
3-2-1. 일본에서 소개된 주요 K-POP가수
다음으로 K-POP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에서의 한류라는 맥락에서는 BoA가 원조 K-POP가수라고 할 수 있다. BoA의 등장 이후 K-POP은 2008년경부터 점차 붐이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현재는 주로 K-POP 아이돌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먼저 동방신기, BIGBANG과 같은 남성 그룹들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동방신기는 2005년에 일본에서 정식으로 데뷔했는데 실제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말경이었고, 2008년에 처음으로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BIGBANG은 2008년 일본 데뷔 후 2009년, 2010년에 일본 음반 대상에서 잇달아 ‘최우수신인상’과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그룹들의 영향을 받아 CNBLUE, 2PM, BEAST, 2AM 등 남성 아이돌 그룹들이 최근 속속 일본 데뷔를 했다. 2011년에는 이미 드라마를 통해 인기가 있었던 장근석도 가수로 데뷔했다. 장근석은 2011년 3월 일본 여성 패션 잡지 ‘an・an’의 표지 모델을 맡았는데 ‘an・an’ 3월 23일호는 판매 직후 28만부라는 판매 기록을 세우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보이고 있다.
2010년에 들어와 아시아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끌었던 걸그룹들이 일본에서도 연달아 데뷔했다. 특히 KARA와 소녀시대는 높은 인기를 끌며 많은 일본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 외에도 T-ara, 2NE1, Secret, 4Minute 등 걸그룹들도 앞다퉈 일본 진출 중이며, 현재 일본은 K-POP 아이돌 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K-POP은 일본에서 하나의 음악 장르로 확실하게 정착했고 2012년 7월에 일본 데뷔 예정인 WonderGirls도 벌써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K-POP 붐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3-2-2. 수용 배경
수용 배경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K-POP은 누가 소비했는지에 대해서 밝히고자 한다. K-POP팬들의 특성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 팬이 74%였고 팬의 연령층은 40대 37%, 30대 30%, 20대 27.3%, 10대 5.8% 순이었다.

조사 결과 K-POP팬은 40대가 가장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전체 비율에서 보면 10-30대의 젊은 세대가 과반수를 넘었다. 한국 드라마는 주로 40대 이상의 여성들이 지지한 것에 비해 K-POP은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고 있다. 남성 아이돌의 팬은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지만 2010년부터 K-POP 걸그룹의 등장으로 남성들도 점차 K-POP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K-POP의 특징에 대해서 정리하여 어떻게 일본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K-POP붐이 일어난 주된 이유는 '글로벌성’과 ‘현대 일본 지역성과의 유사성’ 때문이며,‘옛날의 좋았던 일본의 지역성’을 보여줬던 드라마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K-POP이 가지고 있는 글로벌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K-POP 아이돌은 ‘다국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멤버의 이름이나 애칭으로 서양식 이름을 사용하거나 한국 국적이 아닌 멤버도 많다. 이름의 예로는 ‘G-Dragon’‘T.O.P’(BIGBANG), ‘써니’(소녀시대)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소녀시대의 ‘제시카’와 ‘티파니’는 미국 국적이고 2PM의 ‘닉쿤’의 경우 국적은 미국, 아버지는 태국인, 어머니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이런 특징은 글로벌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받아들이기 좋은 요소다.
둘째로 일본에서의 K-POP 걸그룹은 ‘멋진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고 그것이 젊은 여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K-POP 걸그룹은 귀엽다기보다 예쁜 미인형 얼굴에다 키도 크고 어른스러운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엄격한 훈련으로 다듬어진 가창력과 댄스 등에 여성들은 동경을 갖게 되었다. 이런 매력에 더해 능력 또한 출중한 K-POP 아이돌의 모습은 한국의 지역성이라기 보다 ‘글로벌성’이며,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글로벌한’ 수준에 도달한 멋진 여성인 K-POP 아이돌에게 동경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현대 일본의 지역성과의 유사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그룹 형태’를 지적할 수 있다. 물론 아이돌 그룹이라는 존재는 많은 나라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구미 제국과 비교하면 현대 일본에서는 인원수가 3명 이상인 그룹 가수들이 인기를 끄는 경향이 있다. 2011년 미국 Billboard Album Ranking에 의하면 탑10에 진입한 가수 중 1그룹을 제외하고 나머지 9명은 모두 솔로 가수였다. 한편 2011년 일본 Oricon Album Ranking에 의하면 탑10에 7개의 그룹 가수들이 진입했다. 현대 일본은 그룹 형태의 가수가 인기를 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현대 일본의 특징이 K-POP 아이돌 그룹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둘째로 ‘중성적인 남성상’을 일부 K-POP 가수들이 가지고 있다. ‘꽃미남’이라고 불리는 예쁜 얼굴이나 ‘귀여운 남동생’ 같은 매력을 가진 K-POP 아이돌들이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일본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장근석은 ‘꽃미남’ 스타일의 외모에, 일본 팬들이 ‘근짱’이라고 부를 정도로 ‘귀여운’ 존재로 인식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성적인 남성상은 현대 일본에서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쟈니즈 아이돌들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현대 일본과의 유사성이 인기를 끈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 고찰한 바와 같이 K-POP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한국 음악 업계의 전략의 영향으로 ‘글로벌성’과 ‘현대 일본의 지역성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K-POP이 일본에서 수용된 이유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드라마가 ‘옛날의 좋았던 일본의 지역성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K-POP은 ‘일본과의 동시대성’을 보이면서, 이에 공감한 일본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붐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4. 결론
최근 일본에서의 한류에 대해서 한국 사회에서 보도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일본에서의 한류란 2003년에 갑자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가 한국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003년부터 시작된 한류 붐은 처음에는 한국 드라마를 중년 이상의 세대가 소비하는 현상이었다. 이후에도 한국 드라마는 일본의 BS(위성)방송에서 대량 소비되고 있으며 일시적 붐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K-POP에 대해서는 한류 붐이 시작될 무렵부터 40대 이하의 여성을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2008년부터 본격적인 붐이 시작됐다. 최근에는 걸그룹을 2,30대 여성들이 지지하고 있고 점차 젊은 남성 팬들이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식으로 현재까지 한류 붐은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왔고 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의 엔터테인먼트 장르로서 정착된 것이다.
 2003년부터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유는 ‘가족(공동체)의 사랑과 유대’‘예의와 배려심’ ‘남자다움’‘성실함’같은 ‘한국의 지역성’이 ‘옛날의 좋았던 일본의 지역성’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조금 늦게 시작된 K-POP이 유행하고 있는 이유는 ‘다국적’ ‘멋진 여성’같은 ‘글로벌성’을 가지면서 ‘그룹 형태’‘중성적인 남성상’같은‘현대 일본의 지역성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에 처음으로 한국 드라마 붐이 시작한 시기에는 ‘한국 지역성’이 ‘옛날의 좋았던 일본의 지역성’과 유사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K-POP 붐이 일어나면서 한국문화가 ‘옛날의 좋았던 일본’과 비슷한 뿐만 아니라 ‘현대 일본’과도 유사하고 ‘동시대적’이라고 인식하는 일본인들도 증가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엔터테인먼트 장르로서 자리 잡은 한류를 통해 앞으로 더욱 종합적이고 다양한 한국의 모습이 일본에 전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参考文献>
・石井健一編著 『東アジアの日本大衆文化』 蒼蒼社 2001
・イ・ヒャンジン著 清水由希子訳 『韓流の社会学-ファンダム‘家族’異文化交流』 岩波書店 2008
・小倉紀蔵・小針進編 『韓流ハンドブック』新書館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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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権容奭 『「韓流」と「日流」 文化から読み解く日韓新時代』 NHK出版 2010
・鄭大均 『韓国のイメージ 戦後日本人の隣国観』 中央公論社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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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붐은 2004년부터 시작했다’는 논자도 있지만 본고에서는 ‘겨울연가’를 기준으로 2003년을 한류의 시작으로 본다.
石井健一編著 『東アジアの日本大衆文化』(蒼蒼社 2001) pp.216-219참조.
鄭大均『韓国のイメージ』(中央公論社 1995) pp.17-18참조.
小倉紀蔵・小針進編 『韓流ハンドブック』(新書館 2007) p.10참조.
박용구 「겨울연가 ‘쓰나미’와 일본인의 대한 이미지 변화」『일본연구』제31호 (2007.3) p. 49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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権容奭 『「韓流」と「日流」 文化から読み解く日韓新時代』 (NHK出版 2010) p.120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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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良俶 「メディア上の<韓国>イメージ -日本における『韓流』ドラマの消費観点から-」『日本言語文化』第17号 (2010.10) p. 451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옛날의 좋았던 시대’란 쇼와 30년대(1957-1964)쯤의 고도 경제 성장기의 일본 사회를 가리킨다. 생활 면에서는 아직까지 불편한 면이 있었으나 지금과 다른 ‘마음이 따뜻해지는’ 밀접한 인간관계 형성이 가능한 시대였다.’
イ・ヒャンジン著 清水由希子訳『韓流の社会学-ファンダム ‘家族’異文化交流』 (岩波書店 2008) p.26참조
小倉・小針(2007) p.81
「生まれ変わったら 探したい彼が…」 朝日新聞 (2006.10.21 석간)
小倉・小針(2007) pp. 36-37참조
「‘한류열풍’ 바라보는 일본 기자의 충고」 조선일보 (2004.11.10)
‘Johnny & Associates, Inc’ SMAP, Kinki-Kids, 아라시 등 남성 아이돌이 소속하는 연예 기획사.
小倉・小針(2007) p.80
ルース・ベネディクト著 長谷川松治訳『菊と刀 日本文化の原型』(社会思想社 1967)p.245 참조
한국을 옛날 시대로만 보고 있으며 현실적인 한국의 모습에 대한 관심이나 한국이 일본과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다는 시선이 결여되어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金(2010) pp.464-465, 権(2010) p.51참조)
「東方神起アルバム『T』発売 男性からの認知も上昇」オリコンニュース (2008.01.20)
http://www.oricon.co.jp/news/rankmusic/51278/(2012.05.18 19시 검색)
「 」http://contents.innolife.net/news/list.php?ac_id=4&ai_id=129841 (2012.05.27 8시 검색) 사단법인 일본 잡지협회(社団法人日本雑誌協会)의 인쇄 부수 공표에 의하면 ‘anan’의 2012년 1월부터 3월까지의 발행 부수는 20만3231부며 28만부는 3개월 인쇄 부수보다도 많은 기록이다.
http://www.j-magazine.or.jp/magadata/?module=list&action=list (2012.05.24 22시 검색)
「「Wonder Girls」、7月に日本進出へ 」朝日新聞デジタル 2012.05.10
http://www.asahi.com/showbiz/korea/AUT201205100028.html (2012.05.18 19시 검색)
이 설문조사는 2011년 8월에 인터넷 상에서 ‘K-POP를 좋아한다’고 답한 약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2011.11.07호
남성 그룹에 대해서는 ‘성실하다’ ‘파워플하다’ 등의 호평도 얻고 있어서 종래의 ‘남자다움’과의 유사성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여기서는 현대 일본과의 유사성에 대해서 주목하기로 한다.
「日本のアイドルファンがK-POPにハマらないワケ」 日刊SPA! 2011.09.08
http://nikkan-spa.jp/5471 (2012.05.27 9시 검색)
「Best of 2011 Billboard 200 Albums」
http://www.billboard.com/#/charts-year-end/the-billboard-200?year=2011 (2011.06.08 12시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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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ricon.co.jp/music/special/2011/musicrank1219/index03.html (2011.06.08 12시 검색)

IV. 임수연 학생(건국대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발표문

목차
1. 서론
2. 한류의 정의
1) 한류의 정의
2) 한류의 재정의
3. 한류의 원류
1) 역사적 문화교류의 형태와 의의
2) 고려풍 - 역사 속 ‘중국의 한류’의 원류
3) 구다라 열풍 - 역사 속 ‘일본의 한류’의 원류
4) 한류의 원류와 오늘날의 한류
4. 한류와 동아시아의 상관관계
5. 결론

1. 서론
1990년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한류’가 시작되었다. 특히 1992년 한·중 수교로 한국은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1997년에는 중국 CCTV에서 한국 드리마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되었으며, 1998년에는 한국의 음반이 중국에서 판매되며 한류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는 <겨울연가>가 2003년 NHK의 위성 제2방송(BS2)에서, 2004년 지상파인 NHK에서 방영되었다. 그리고 가수 보아의 일본진출 성공으로 많은 한국의 가수들이 직접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미 동북아시아에서 한류 이전에 ‘홍콩류’, ‘일류’ 등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문화유행은 대략 10년을 주기로 바뀌었다. 2000년을 전후로 동북아시아에서는 ‘한류’가 유행을 하고 있다. 한국 국내에서도 ‘한류’가 다른 동북아시아의 문화유행으로 대체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류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시급하다. 본 연구에서는 한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역사적으로 한류의 원류를 밝혀 그 속에서 교훈을 얻고자 한다.
한류의 원류를 찾는 연구는 현재 매우 부족하다. 우선 가장 기초가 되는 한류의 정의도 장규수(2011)의 연구와 각 정부기관에서 규정한 정의, 일반상식 수준의 정의가 있을 뿐이다. 장팔현(2005)은 ‘동북아 역사전쟁한류분석’의 일환으로 일본의 아스카․에도 시대에 백제가 일본에 불교 문화를 전파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2006년에 ‘고대에도 한류가 있었다’라는 주제로 개최된 학술대회가 있었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한류의 원류를 통해 한국의 고대 문화 정체성을 찾고, 한류의 지속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열렸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문화 수준이 높은 국가의 문화가 동북아시아 유행을 선도한다는 전제 속에서 논의된다. 고대에는 한국이, 중세에는 중국이, 근대에는 일본이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문화적 우위를 차지한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한류의 원류로 논의된 갑옷, 공연 문화 등의 문화전파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에서 비교우위를 전제하는 것은 문화제국주의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한다. 그리고 미시적관점에서 문화교류가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문화기술의 전파와 문화유행이 혼용되고 있다. 거시적이고 초국가적인 차원에서 주체성을 문화유행의 전제조건으로 한류 문화의 원류를 새롭게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2. 한류의 정의
1) 한류의 정의
2000년 중국의 <人民日報>에서는 한국가수들의 대형 콘서트 개최를 보도하면서 ‘한류(韓流)’라는 일반명사를 사용하였다. 여기서 한류의 의미는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동북아의 중국과 일본 뿐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 유행하는 문화흐름을 통칭하게 되었다. 특히 음악, 드라마. 패션, 영화 등의 문화들이 다른 나라에서 유행하며 소비되는 현상이다. 한류의 ‘~류’라는 어원이 이미 존재하였다. 1980년 대중문화의 소비가 활발한 일본에서는 ‘홍콩류’, ‘항류(港流)’가 있었고, 1990년에는 일본 스스로 ‘일류(日流)’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대만의 문화가 유행했을 때에도 ‘대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한류’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면, ‘~류’라는 용어는 대략 10년 주기로 동아시아의 문화 유행을 선도하는 국가의 앞 글자와 ‘류(流 )’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1990년의 한류를 ‘한류’로 2000년대의 한류를 ‘신한류’라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한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한류 1.0~ 한류 4.0’을 분류하여 구분하고 있다. 한류 1.0은 한국의 드라마 유행이고, 한류 2.0은 한국의 K-Pop이고, 한류 3.0은 한국의 전통문화, 나아가서 한류 4.0은 한국의 생활방식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구분 방식은 학술적이기 보다는 주로 문화정책적인 측면에서 논의된 것이다. 그리고 한류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콘텐츠진흥원’ 등의 준․공기관에서도 한류를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궁극적으로 한류를 접한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은 한국의 콘텐츠를 세계화하고 한류를 이끌어 나가는 새로운 한류 콘텐츠 개발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앞으로 한류를 이끌 한류 3.0. 한류 4.0의 문화콘텐츠는 한류의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2) 한류의 재정의
기존 한류의 정의는 한류 현상을 그대로 정의한 것이다. 주로 문화유행에서 ‘유행’에 초점을 맞춘 정의이다. 그래서 주로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드라마, K-Pop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문화유행에서 ‘문화’에 초점을 맞춘 한류의 정의가 필요하다. 한류는 단지 외국에서 한국의 드라마를 보고, K-Pop을 보는 것만이 아니다. 그 속의 한국 문화가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류의 재정의는 앞으로 한류가 어떤 문화콘텐츠를 담아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대중매체에 치우쳐진 한류보다 좀 더 균형이 잡힌 한국문화의 유행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크게 3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이다. 주로 문화인류학에서 연구 대상이 되는 것으로 관습적으로 공동체가 공유하는 문화를 말한다. 이를 한류와 연결하여 본다면 한류 3.0의 전통문화(한식), 한류 4.0의 생활방식과 연관시킬 수 있는 개념이다. 둘째, 지적, 정신적, 예술적 산물의 문화이다. 레이먼드 윌리암스의 문화 개념이 대표적이며 창의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화 산물이다. 이것은 한류 1.0의 드라마, 한류 2.0의 K-Pop과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징체계로서의 문화가 있다. 이렇게 문화는 크게 3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현재 한류는 이 중에서 상징체계로의 문화는 아직 고려되지 않고 있다.

3. 한류의 원류
1) 역사적 문화교류의 형태와 의의
역사적으로 문화교류는 '조공'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화사상 속에서 조공은 중국의 속국이 중국에게 바치는 공물로 인식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조공'은 두 국가가 서로 주고받는 문물이라는 새로운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공을 전달하는 것은 외교사절단이다. 국가에서 정치적 문제 등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을 외교사절단으로 선정한다. 이 외교사절단은 주로 지적, 정신적, 예술적 산물의 문화교류를 주도하였다. 그리고 이 외교사절단을 따라 외국으로 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있었다. 이들이 갖고 가는 문물은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교류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면 생활양식 문화의 하나인 음식문화에서 고려의 우수한 인삼이나 예술적 산물인 고려청자가 있을 것이다. 이후 무역이 발달하게 됨에 따라 국가차원이 아닌 민간차원의 교류가 활발하게 되었다.
또 다른 문화교류의 형태는 바로 사상, 이론, 종교와 관련된 교류이다. 이는 상징체계로서의 문화 교류라고 할 수 있다. 주로 고대 시기에는 불교, 유교의 교류라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 백제의 왕인은 직접 일본으로 가서 천자문과 논어를 전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고구려의 혜자는 일본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혜관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였다. 특히 담징은 호류사의 금당벽화를 그려 일본 미술에 발전을 주기도 하였다. 주로 승려와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문화교류가 이루어졌다.
마지막으로 이주에 따른 자연스러운 문화교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문화전파' 차원이 아니라 문화의 수용 3가지 태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문화가 유행하거나 융합, 혹은 사라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신라시대에는 중국 당나라에 신라인들이 유학을 공부하기 위해 갔다. 이 때 산둥성 일대에는 신라관, 신라방, 신라소, 신라원이 생겼다. 이곳에서는 신라의 건축과 의복, 음식 등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시대 공녀들이 대거 원나라에서 거주하게 되면서 고려의 의복, 음식, 예술 등이 원나라의 왕조를 중심으로 유행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삼국시대 백제인들이 5세기~7세기에 대거 일본의 오사카 부근으로 이주를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백제인들의 문화와 문화기술이 일본 사회에 스며들게 된다.
이러한 문화교류는 역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문화발전에 밑바탕이 되었으며, 동북아시아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문화전파는 각 시대마다 항상 존재했다. 그러나 한류는 단순히 문화 물물, 기술의 유행이 아니라 한국의 의복, 음식, 기술, 사상까지도 포함하는 문화교류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현대의 한류와 가장 비슷한 양상으로 문화교류 및 문화유행을 주도한 사건들을 한류의 원류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국에서는 고려시대의 고려풍, 일본에서는 구다라 열풍이 있을 것이다.

2) 고려풍 - 역사 속 ‘중국의 한류’의 원류
2-1) 고려가 고려풍을 이끌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
오늘날 우리는 한국을 '코리아'로 부르고 있다. 이 어원은 바로 '고려'에서 비롯되었다. 중국의 실크로드로 고려의 문물이 아라비아 지역으로까지 넓게 교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려'가 알려지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한국을 '코리아'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실크로드를 통해 다양한 나라의 문물이 고려로 유입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고려로 유입되는 다른 나라의 문물과 문화를 수용하는 주체적인 태도가 바로 '코리아'를 만들 수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제천행사와 불교의 의식이 합쳐진 고려의 '팔관회'라는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고려 태조 왕 때부터 계속 내려온 행사였다. 이 행사 때에는 왕, 신하, 백성들이 모두 모여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행사였다. 이런 중대한 행사에 고려는 각국의 사신들을 팔관회에 초대하였다. 이 행사를 통해 송, 이슬람, 동남아시아의 문화가 고려사회에 유입되었다. 고려는 이 다양한 나라의 문화들을 고려의 기존 문화와 잘 융합시켜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고려는 다른 나라의 문화와 문물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개방적였으며, 주체적으로 고려만의 문화로 승화시킬 수 있는 문화발전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발전 능력은 원나라 간섭기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중국의 한족을 멸망시키고 몽고의 원나라가 세계 정복 활동을 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 몽고는 고려와도 많은 전쟁을 치뤘다. 하지만 고려는 무려 40년간 항쟁을 했으며, 몽고와의 7차례 전쟁 속에서도 팔만대장경과 같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고려인들의 문화적 자존감은 원나라의 황실에 고려양 혹은 고려풍을 유행시켰다. 반대로 고려에서는 몽고풍이 유행을 하지만 이 또한 고려의 기존 문화와 융합하여 또 다른 문화로 발전하였다.

2-2) 고려풍
원나라 간섭기에 고려는 원나라에 인삼, 특수약재, 청자, 비단, 종이, 담비가죽, 사냥매 등의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그리고 고려는 '공녀'를 원나라에 보내게 되었다. 이 공녀는 원나라의 궁녀 혹은 원나라의 관료에게 시집을 가게 되는 것이었다. 이에 많은 공녀들이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 이중에서 원나라 순제의 정비가 된 '기황후'라는 인물이 있다. '기황후'로 말미암아 원나라 황실에서는 고려의 복식과 음식, 기물이 유행하게 된다. 이는 고려의 우수한 문물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려풍의 생활양식으로서의 문화교류는 주로 복식과 음식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의 빈대떡, 쌀떡, '어갱'이라고 불리는 생선국, '송자'라고 불리는 잣, '계육'이라고 불리는 닭고기, 송골병, 인삼주, 다식, 조청 등의 음식이 원나라에 유입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떡살과 같은 음식도구들도 전래되었다. 고려풍을 이끈 고려의 복식문화는 저고리가 허리선까지 내려오며 소매가 넓은 치마저고리였다. 본래 원나라는 몽고의 유목민족이였기 때문에 말을 잘 탈 수 있도록 여성도 바지를 입으며 소매가 좁은 옷을 입었다. 하지만 정착생활을 하게 된 원나라의 몽고인들은 더 이상 말을 타지 않아도 되었다. 이 때 기황후가 등극하였고 수만 명의 궁녀들과 상류층의 여인들이 그녀의 복식차림을 따르게 되었다. 기황후가 황후의 자리에 있던 30여년 동안 정착생활에 알맞으며 좋은 옷감과 세련된 디자인의 고려복식은 크게 유행을 할 수 있었다.
지적, 정신적, 예술적 산물의 고려풍은 청자와 비단의 유행이다. 청자는 오묘한 옥빛의 비취색을 띠고 있다. 이 아름다운 색은 현대의 기술로도 내기 어려운 색이다. 비취색은 청자에 있는 철분이 빠져나와야 얻을 수 있는 색이다. 만약 도자기를 굽는 가마에서 온도 조절을 실패한다면 뛰어난 비취색을 얻을 수 없고, 붉은 청자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청자 중에서 상감의 기법을 사용한 상감청자가 있다. 상감의 기법은 도자기 표면에 안료를 사용하여 무늬를 넣는 것이 아니다. 도자기의 표면에 무늬를 파내고 그 속에 하얀색과 흙갈색을 띠는 재료를 넣어 굽는 것이다. 대략 도자기를 굽는 온도는 1000°C내외이다. 이 때 도자기 표면의 파낸 부분에 금이 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상감기법으로 도자기를 만들지 못 하였다. 하지만 고려는 금속공예의 ‘은입사’ 기법과 목공예 기법의 ‘나전칠기’를 활용하여 도자기공예의 ‘상감기법’으로 활용한 것이다. 고려 상감청자는 고려 문화 예술의 지적, 정신적, 예술적 최고의 산물이었다. 바로 이러한 청자가 원나라에서 고려의 문물로 유행을 하였다. 그리고 비단은 고려의 의복문화가 유행하면서 비단의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비단은 옷감 중에서 가장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을 넣을 수 있다. 비단을 만드는 베틀도 일반 옷감을 만드는 베틀에 비해 많은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비단도 고려청자 못지않은 지적, 예술적 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비록 중국 내에서도 비단을 생산할 수는 있었지만 당시 좋은 품질의 고려 비단이 크게 유행하였다.
상징체계 문화의 고려풍은 바로 고려의 유학과 불교이다. 원나라의 세조는 고려인들이 유학경서에 능통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려국유학제학사’를 설치하여 원나라의 학자들이 고려의 유학을 연구하도록 하였다. 고려의 충성왕은 원나라 수도에 '만권당'을 세워 양국의 학문적 교류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고려 불교경전들의 '사경본'이 전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