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연구소 전북지역 역사기행
부제
  고창-정읍-임실-부안-군산-익산
일시
  2017.1025-27
작성일
  2017-10-28
조회수
  273

   
 
 
 
 
 
 
 
 
 
 
 
 
 
 
 
 
 

2017 연구소 전북지역 역사기행 자료

사단법인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제공<2017.10.25.>

1. 일정: 2017.10.25.~10.27(2박 3일 간)

2. 일정계획 행선지/이동소요시간
◈ 1일차≫ 09:00 서울 도곡동 연구소 출발→고창읍성/판소리박물관(270km/4H) <13:00 중식>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40km/40’) →이해용 교수님 별장 1 박 (52km/1.5H) <18:00 석식 및 익일 08:00 조식 주변식당> →
◈ 2일차≫ 임실 치즈마을/사선대→부안 채석강(95km/2H)→새만금홍보관(12km/2H) <12:00 중식> →군산 근대역사박물관(50km/0.4H)→대천콘도1관 1 박 (60km/1H) <19:00 석식 및 08:00 조식 주변식당>→익산 미륵사지(40km/1H)→보석박물관(12km/0.4H)→완주 삼례문화예술촌 (15km/0.4H) <12:00 중식> →양재역 도착 해산 17:00 (200km/3H)

3. 방문지 소개
1) 고창 읍성(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로 1)
사적 제145호. 둘레 1,684m, 높이 3.6m. 모양성이라고도 한다. 축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숙종 때 이항(李恒)이 주민의 힘을 빌려 8년 만에 완성시켰다는 설과, 1453년(단종 1)에 축조되었다는 설이 있다. 성벽에 "濟州始", "和順始", "羅州始", "癸酉所築宋芝政"이라고 새겨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계유년에 전라도의 여러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계유년이 어느 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벽축성법으로 보아 1573년으로 짐작된다. 동쪽으로 반등산을 둘러싸고 있으며 동·서·북의 3문(門)과 6치(雉), 2군데의 수구문과 옹성 등이 있다.
1976년 발굴에서 서문터의 기둥 주춧돌과 문짝 달던 위치, 동문터의 기둥 주춧돌을 확인했다. 성벽은 제법 잘 남아 있는데,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을 쓰거나 초석·당간지주를 깨어서 쓴 것도 있다. 이와 같은 읍성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형태로서 행정·군사 시설로 이용되었다. 고창에서는 여자들의 성벽밟기 풍습이 전해 내려오는데, 이는 한 해의 재앙·질병을 막는 의식으로 여겨진다.

2) 고창 판소리박물관(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214-1)
고창판소리박물관은 부지 면적 5,525.45㎡, 건물 연면적 1,219.29㎡에 5개의 전시실과 작업실, 연구실 등을 갖추고 2001년 6월 25일 개관했다. 박물관이 자리 잡은 고창 신재효 고택은 185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중요민속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창판소리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은 판소리도, 모흥갑판소리도, 광대줄타기 등이 전시되어 있는 입구의 ‘멋마당’에서 시작된다. 원형전시실인 ‘명예의 전당’에서는 판소리 역사에 관한 영상과 ‘세계 무형문화유산과 판소리’를 주제로 전시된 사진을 관람할 수 있다. ‘소리마당’에서는 판소리의 역사와 함께 판소리 광대들의 유물인 소리북, 합죽선 등을 볼 수 있다.
‘이나리마당’은 동리(桐里) 신재효와 고창의 소리꾼들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공간이다. ‘발림마당’은 판소리 여섯 마당의 눈대목을 들을 수 있고, 판소리 전승방식인 ‘구전심수’(口傳心授)를 통해 단가와 고법을 배울 수 있는 ‘구전심수교실’이 마련되어 있는 체험 공간이다. 이밖에도 판소리 영상물을 상영 중인 ‘혼마당’과 명창 만정(晩汀) 김소희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다목적실’을 전시시설로 두고 있다.

3)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3-1) 고부봉기: 농민전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전, 1893년 한양과 삼남지방에서는 온통 척왜양의 물결로 술렁거렸다. 이러한 물결은 찬바람이 불면서 잠시 수그러지는가 싶더니 1894년 1월 10일 고부에서 다시끓어 올랐다. 흔히들 말하는 고부군수 조병갑의 탄학만행이 고부봉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조병갑은 부임 초부터 온갖 노략질을 일삼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1893년 11월 30일에 익산군수로 전임발령이 났으나 전라감사 김문현을 통해 고부군수 재취임의 공작을 벌여 마침내 1894년 1월 9일에 재부임하였던 것이다.
다음날 전봉준은 오래 전부터 긴밀한 관계에 있던 동지들에게 연락하는 한편, 군민들을 말목장터로 모았다. 전봉준은 말목장터에 모인 군중을 두 패로 나누어 고부관아로 달려갔다. 새벽공기를 가르는 함성과 함께 고부관아는 힘 안들이고 점령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조정에 알려져 김문현과 조병갑은 그 책임을 추궁당하고, 조병갑의 후임으로 용안현감이었던 박원명이 임명되고 또 장흥부사 이용태가 안핵사(按覈使 조선 시대, 지방에 어떤 일이 터졌을 때에 그 일을 조사하려고 보내던 임시 벼슬)로 임명되었다. 2월 말쯤 신임군수로 부임한 박원명은 농민군과 민정을 의논하고자 이들을 초대하여 크게 잔치를 베풀면서, "모든 것이 고부군에서 잘못하였고, 여러분의 뜻을 받들어 읍폐를 시정하겠다"는 뜻을 전달하였다. 이런 유화책에 말려든 농민들은 하나 둘 해산하기 시작했고, 3월 초 전봉준 이하 간부들은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고부를 표연히 떠났다.
3-2) 무장에서 1차 기병: 고부를 떠난 전봉준은 무장으로 달려가 손화중을 찾았다. 거기서 전봉준은 손화중과 손잡고 4천여 명의 농민군을 모아 '호남창의소'라는 이름 아래 「창의문」을 선포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1894년 3월에 일어난 농민전쟁의 제 1차 기병이었다. 전봉준은 농민군을 이끌고 3월 20일 무장을 출발하여 고부로 쳐들어갔다. 고부를 점령한 후 쌓인 민원을 처리하고 25일에는 백산으로 본진을 옮겼다. 이리하여 부근에서 몰려와 집결된 농민군의 수는 약 8천여 명. 정부에서는 이런 사태에 접하여 3월 29일 장위영 정령관 홍계훈을 전라병사로 제수하였다가 4월 2일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장위영 병정 5대 800여 명을 3척의 전함에 분승시켜 군산항으로 출발시켰다. 김문현은 별장 이경호로 하여금 영병과 포군을 이끌게 하여 백산으로 출동시켰다.

4) 임실 치즈마을(전북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 92-1)
전북 임실 치즈마을은 전주시로부터 약 20Km 거리에 위치하여 도심과의 접근성이 우수한 마을로써 “한국치즈의 원조 임실치즈”의 뿌리를 가진 마을이다. 잘 정리된 농경지로 넓은 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연평균 기온 11도. 풍부한 강수량으로 우량 젖소를 사육하는데 적합한 기후 조건 등 양질의 원유를 생산하는 “천혜의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한국최초의 목장형 유가공의 “숲골”과 “이플” 유제품 공장, 치즈家, 두 마리목장 등이 있다.
치즈마을이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벨기에 출신 디디에세스테벤스(한국명:지정환) 신부님과 심상봉 목사님, 이병오 이장님과 같은 선구자와 주민들의 밤낮 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66년 지정환 신부님이 산양 두 마리를 키우면서 치즈 만들기를 시작하였고, 느티나무로 마을가꾸기를 한 결과 “느티마을”로 불리우다가 마을총회를 통해 “치즈마을”로 개칭하게 되었다.

5) 임실 사선대(전북 임실군 관촌면 관촌리 222 )
'四仙臺'는 1985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아름다운 명승지이다. 명승고적 설화집에 의하면 2천여 년 전 마이산의 두 신선과 영수산의 두 신선이 하루는 이곳 오원강 기슭에 모여 놀다가 병풍처럼 아름다운 둘레의 풍경에 취하여 혹은 대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바위 위를 거닐기도 하면서 맑은 물에 목욕하고 즐기더니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리고, 이때 홀연히 네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네 사람의 학발신선들을 호위하여 어디론지 사라진 이후로 해마다 그들 선남선녀들이 내려와 놀았으므로 어느덧 이곳을 사선대라 하고 까마귀 놀던 강을 오원강이라 불렀다. 트래킹코스를 따라 걸으면 雲棲亭(운서정), 국제조각공원, 천연기념물 387호인 '가침박달나무 군락지'와 388호인 '산개나리 군락지'가 있고 매년 사선대 광장에서는 전국 규모의 사선문화제가 열린다.

6) 부안 채석강
전라북도 기념물 제28호이며,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변산반도 서쪽 끝의 격포항(格浦港) 오른쪽 닭이봉(鷄峰)일대의 1.5㎞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지명으로 변산팔경 중의 하나인 채석범주(彩石帆舟)가 바로 이곳을 말한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채석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바위의 기묘한 형상 때문에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격포항 오른쪽의 닭이 봉 밑 바다에서 추켜올려진 단애는 수성암 단층이 여러 채색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닷물의 침식을 받은 화산성 퇴적암층은 격포리층으로 역암 위에 역암과 사암, 사암과 이암의 교대층[호층, 互層], 셰일, 화산회로 이루어진 이암의 층서를 나타낸다. 퇴적환경은 화산 분출물이 깊은 호수 밑바닥에 고밀도 저탁류(底濁流, turbidity current)로 퇴적된 수중 삼각주로 해석된다. 채석강의 절벽에는 습곡, 단층구조, 관입구조와 파식대 등이 관업하게 나타나며 지형ㆍ지질 현장 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단층(斷層)과 습곡(褶曲)이 유난히 발달된 기암절벽이 십자동굴을 비롯하여 곳곳에 해식동굴(海蝕洞窟)을 형성하고 있다.
채석강이 끝나는 북단에는 물이 맑기로 유명한 격포해수욕장이 있다. 닭이봉 꼭대기에는 팔각정의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보면 멀리 위도와 칠산(七山) 앞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파랑의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파식대와 해안절벽이 후퇴하면서 낙석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어 탐방객의 접근을 통제하는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채석강 남단의 격포항의 선박을 위해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어 경관을 해치는 요인이 되고 있다.

7) 새만금방조제(전라북도 김제시, 군산시, 부안군)
새만금 간척 사업은 전라북도 군산, 김제, 부안 앞바다를 연결하는 방조제 33.9km를 세우고, 그 안에 땅 28,300 ha, 호수 11,800 ha를 만드는 계획이다. 사업 자체는 전라북도 옥구군 옥서면을 중심으로 한 금강, 만경강, 동진강 하구를 둘러싼 갯벌을 개발하려는 옥서 지구 농업 개발 계획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나중에 새만금 사업으로 바뀌었고 1991년부터 사업이 추진되었다. 새만금 방조제는 기존에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알려졌던 네덜란드의 자위더르 방조제(32.5km)보다 1.4km 긴 33.9km의 길이로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8)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은 전통적 물류 유통 도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던 군산시의 정체성을 확인하여 현재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전국 최대의 근대 문화유산을 소유한 군산시의 문화적 특징을 관광 자원으로 홍보하고자 건립하였다. 관람객을 위한 전시실 구성은 박물관 1층 입구의 어청도 등대 모형을 시작으로 종합 영상실, 삶과 문화, 해상 유통의 중심지, 해상 유통의 전성기, 근·현대의 무역, 바다와 문화 등을 주제로 한 해양 물류 역사관, 바다 여행, 바닷가 친구들, 바다 도시 군산 등을 주제로 한 어린이 박물관, 근대사 관련 자료실인 근대 규장각실과 근대 도시, 탁류의 시대 등으로 구성된 근대 생활관 그리고 분기별 테마 전시 공간인 기획 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지 면적은 8,347㎡이며 건축 연면적은 4,248㎡이다. 건물 규모는 지하 1층, 지상 4층이다. 전시관은 해양 물류 역사관[509㎡], 어린이 체험관[126㎡], 근대 생활관[617㎡], 기획 전시실[231㎡]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보유 유물은 4,400점으로 이중 각계각층의 시민, 단체들이 기증한 유물이 2,250여 점이다. 군산 근대 역사 박물관의 운영과 관련한 인적 구성은 군산시 부시장을 중심으로 박물관 운영 위원회와 박물관장 및 박물관 관리계로 구성되어 있다. 2011년 9월 개관 이후 개관 기념 전시를 시작으로 군산동 국사 소조 석가 여래 삼존상 복장 유물 특별전, 2012년에는 8·15 특별전 우리 땅, 그들만의 축제를 기획 전시하였다. 2013년에는 2013 특별전 화교의 삶과 문화를 개최하였고, 역시 특별전인 쌍천 이영춘 박사의 삶, 파란 눈의 선교사가 전해준 선물, 독도, 우리의 소중한 영토 특별전을 개최하였다.

9) 익산 미륵사지(益山彌勒寺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삼국유사〉 권2 무왕조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 무왕(600~641)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獅子寺)로 향하고 있었을 때 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나자 왕비가 이곳에 절을 세우기를 소원하여 못을 메우고 탑과 법상, 미륵삼회전, 낭무(廊廡)의 건물을 건립하고 미륵사라 명명했다고 한다.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17세기경에는 이미 폐사되었으며 현재는 반쯤 파손되어 있는 서탑과 당간지주 등 일부만 전해지고 있다. 미륵사지는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서 일제강점기 때 이미 조사되기 시작했으며 그 뒤 1980년대 문화재관리국의 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본격적인 발굴조사의 결과로 동탑과 서탑 사이에 목탑을 세워서 일직선상에 탑 3개를 배열하고, 각 탑의 북쪽편에 금당을 1개씩 둔 가람배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한 쌍의 금당과 석탑에는 각기 회랑이 둘러져 있어 탑과 금당을 1개의 절로 생각할 때 마치 3개의 절이 모여 있는 듯한 3원식(三院式)의 구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3개의 금당에 모두 지하공간이 있는 특이한 구조의 건물이다. 이 절터에서는 막새기와·토기·불상 등을 비롯하여 1만여 점의 각종 유물이 나왔으며 특히 '미륵사'라든가 '국5년경진'·'요봉원'(姚奉院)·'지원4년'(至元四年)·'천력3년'(天歷三年) 등의 문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다. 이 미륵사지는 미륵삼존불의 출현으로 절을 짓게 된 창건동기나 미륵이 이 세상에 와서 3번의 설법을 하기 위한 3군데의 장소를 마련하고 있는 점, 그리고 미륵이 머무를 장소로 금당에 지하공간을 설치했다는 점 등에서 미륵불이 이 세상에 내려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건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국보 제11호. 높이 14.2m.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으로 중국에서 전래된 목탑양식을 석재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현재 6층의 탑신이 남아 있으나 일부가 붕괴되어 시멘트로 보수한 상태이며 원래는 7층 또는 9층이었다는 설이 있다. 낮고 작은 기단 위에 건립되었으며 각 층의 탑신은 각 면이 3칸으로 되어 있다. 1층 탑신은 네 귀퉁이에 배흘림이 분명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탱주를 새겼으며 각 면의 중앙에는 내부로 통하는 문이 1개씩 설치되어 있다.
내부 중앙에는 십자로 교차되는 점에 탑을 지탱하는 석조의 찰주가 세워져 있다. 각 층의 옥개는 얇고 넓은 편으로 중앙에서 직선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끝부분에서 약간 위로 올라간 모습이며 옥개석은 3단 받침으로 되어 있다. 2층 탑신은 1층에 비해 높이가 현저하게 낮아졌으며 옥개부분도 위로 올라갈수록 체감되어 전반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 석탑은 〈삼국유사〉에 보이는 기록이나 석탑의 양식적 특징으로 볼 때 백제 말기인 무왕대에 건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10) 익산 보석박물관(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호반로 8)
예로부터 익산은 보석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러한 익산의 지역적 특색을 살려 설립된 것이 바로 보석박물관이다. 익산 보석박물관은 백제 문화유적과 보석의 아름다움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141,990㎡ 규모의 왕궁보석 테마관광지내에 건립되었으며, 진귀한 보석 원석 등을 11만여 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박물관이다.
또한, 지질시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화석전시관에는 시대별 각종화석과 익룡, 수장룡, 실물크기의 골격공룡 등을 전시하여 청소년들에게 상상의 세계를 펼칠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보석박물관은 보석박물관과 화석전시관, 체험관 등으로 구성되며 해당 구역의 구성은 각각 보석박물관 6,214㎡ (지하1층, 지상2층), 화석전시관 932㎡ (지하1층, 지상2층), 체험관 574㎡ (지하1층, 지상2층) 으로 이루어져 있다.
* 보석박물관의 체험 프로그램: 보석박물관에서는 주말에 방문하는 관람객에게 귀금속 보석에 관련된 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운영기간은 동절기를 제외한 3월부터 11월까지이며, 익산보석박물관 2층 아트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칠보공예기법을 응용한 은 액세서리 장신구 만들기인 칠보공예와 보석물리기(핸드폰줄,목걸이), 은반지 등을 만들 수 있는 나만의 보석 만들기가 진행된다.

11) 완주 삼례문화예술촌(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역로 81-13)
전라북도 완주역 근처에는 흥미로운 예술 공간이 있다. ‘디지인뮤지엄’, ‘목공소’, ‘책공방’, ‘북아트센터’, ‘미디어아트갤러리’가 한 동네를 이루는 삼례문화예술촌이다. 90년 전까지 쌀 창고로 쓰였던 공간이다. 시간이 지나 이 곳간에는 쌀 대신 보물 같은 예술품이 가득 채워졌다. 아이들에게는 창고도 미술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물론 공간을 넘나들며 예술 체험도 즐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삼례문화예술촌에 새겨진 우리네 아픈 역사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뜻 깊은 기회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에도 기존의 시설을 재해석한 공간이 부쩍 늘었다. 반가운 일이다. 그 안에 숨 쉬는 이력 때문이다. 역사란 짓고 허무는 게 아니라 희로애락의 모든 자취를 촘촘하게 이어 붙인 시간이라는 것을 공간의 기억이 대신 증명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그 사실이 더욱 값지다. 아이들에게는 예술 공간을 넘어 그 터에 아로새긴 시간이라는 기억의 단초가 생긴다. 부모가 그 시간들을 먼저 더듬고 함께 떠나면 좀 더 유익하다. 삼례문화예술촌은 삼례역에서 내려 곧장 가기보다 옛 삼례역에 자리한 '세계막사발미술관'을 들러 오기를 권한다. 둘은 무관한듯하지만 밀접하다.
조선시대부터 삼례역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일제 강점기에도 기차역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제 강점기의 기차역은 수탈의 수단으로 쓰였다. 당시에는 주로 쌀을 수탈했다. 만경평야의 쌀들은 기차와 차량으로 삼례에 도착했고, 삼례의 쌀 창고에서 머물다 다시 기차에 실려 군산역으로, 군산에서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삼례문화예술촌의 쌀 창고는 1920년에 지어져 광복 때까지 일제의 수탈에 활용됐다. 1970~1980년대에는 새로 지은 2동을 합쳐 7동이 농협 창고 역할을 했다. 그 후 완주군에서 창고를 매입했고 2013년 6월에 문화예술촌을 꾸렸다. 건물의 원형을 가능한 훼손하지 않고 새롭게 단장했다. 그 결과 그해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