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제목 : 연구소,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탐방
자료 준비 :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www.east-asia.or.kr
일시 : 2023.11.30
덕수궁德壽宮은 1897년에 선포된 황제국,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옛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입니다.
덕수궁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월산대군 저택과 그 주변 민가를 여러 채 합하여 ‘시어소로 정하여 행궁[정릉동 행궁]으로 삼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한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궁궐의 모습을 갖춘 덕수궁은 인목대비 유폐와 인조반정을 겪으면서 규모가 축소되었고, 특히 인조가 즉위한 이후 즉조당과 석어당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로써 덕수궁은 더 이상 왕이 공식적으로 머물며 국정업무를 보던 궁궐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난 이후 덕수궁이 다시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후, 1897년 2월에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선포한 후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04년 덕수궁 대화재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 이후 덕수궁은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이때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름 또한 바뀌게 되었습니다.
덕수궁 연혁
1593년 선조 26
월산대군 후손의 저택을 시어소時御所로 정하고, 행궁으로 삼음
1608년 광해군 즉위년: 광해군, 정릉동 행궁의 서청(즉조당 추정)에서 즉위
1611년 광해군 3: 정릉동 행궁을 ‘경운궁慶運宮’이라 고침
1618년 광해 10: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서궁’으로 낮추어 부름
1623년 인조 1: 인조, 경운궁 별당(즉조당 추정)에서 즉위
1769년 영조 45: 영조, 즉조당에 ‘양조개어兩朝皆御 계해즉조당癸亥卽堂’이라 쓴 친필을 게판(광해군과 인조가 거둥하셨으며, 인조가 즉위하신 곳이라는 뜻)
1773년 영조 49: 영조, 어필 ‘석어당昔御堂’ 현판을 즉조당에 설치
1896년 고종 33: 명성황후의 빈전과 역대 선왕의 어진을 경운궁으로 옮김
1897년 고종 34: 고종, 인화문仁化門을 통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어함
1897년 광무 1: 고종,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태극전(현 즉조당)에서 황제 즉위 조서 반포, 경운궁 숙옹재에서 영친왕 이은 출생
1899년 광무 3: 미국공사관 서쪽에 보책과 보인을 보관하는 황실도서관, 중명전 건립
1900년 광무 4: 경운궁 궁장 공사 완료로 궐의 경계를 확정 지음
1901년 광무 5: 고종, 중화전과 함녕전에서 50세 생신 진연進宴 거행
경운궁 수옥헌 권역 화재로 전소, 서양식 건물 돈덕전 건립 (추정)
1902년 광무 6: 중층으로 된 정전인 중화전 건립
1904년 광무 8: 함녕전 아궁이에서 시작된 불로 인해 경운궁에 대화재가 발생
고종, 수옥헌으로 거처를 옮김, 순명황후(순종의 첫 번째 비), 수옥헌 영역의 강태실에서 승하
1905년 광무 9: 수옥헌에서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 체결
1906년 광무 10: 중명전에서 세자(순종)와 윤택영의 딸(순정황후)의 결혼축하연 개최, 대안문大安門 수리 후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
1907년 융희 1:경운궁 중화전에서 황태자(순종)의 대리청정 의식 거행
순종, 돈덕전에서 황제즉위식 거행, 고종의 호를 태황제라 부르고 궁호를 덕수德壽라 정한 뒤, 경운궁을 덕수궁德壽宮이라 명명
1910년, 덕수궁 내에 서양식의 전각, 석조전 완공
1911년, 순헌황귀비 엄씨, 덕수궁 즉조당에서 사망
1912년, 태평로(광화문로~남대문) 개설로 인한 덕수궁 동쪽 영역 축소
1913년: 덕수궁 내에 구여당(전통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마지막 건물) 건립 (추정)
1916년:준명당에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한 유치원을 개설
1919년: 고종,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
1925년: 중명전 화재로 전소
1933년: 덕수궁을 공원으로 개조하여 일반에 공개
석조전을 덕수궁미술관으로 개관하여 일본 근대미술품 전시
1935년:돈덕전이 있던 자리에 동물원 신설
1938년:석조전 서관 신축, 석조전을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으로 개관
1945년: 석조전에서 해방기념문화대축전 미술전람회를 개최
1946년: 석조전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
1947년: 석조전에서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개최
1948년:석조전을 UN한국임시위원단 사무실로 사용 ( ~ 1950년 6월 25일)
1954년: 한국전쟁으로 파손된 석조전을 한국 공병단이 수리
1955년: 석조전을 국립박물관으로 사용 ( ~ 1972년)
1961년: 문화재관리국 덕수궁사무소 설치, 대한문 옆 담장을 철거하고 철책 설치
1963년: 덕수궁, 사적으로 지정
1968년: 대한문 옆 철책 철거 및 담장 재설치
담장을 덕수궁 안쪽으로 이전하여, 대한문이 도로 사이에 고립됨
1992년: 석조전에 궁중유물전시관 개관
2010년:중명전, 복원 후 전시관 개관
2014년: 석조전, 복원 후 대한제국역사관 개관
2023년: 돈덕전 재건 후 개관
덕수궁 석조전
석조전은 자주 근대국가를 염원했던 대한제국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입니다. 영국인 존 레지날드 하딩(John Reginald Harding)이 석조전 설계를 맡았고, 1900년부터 1910년까지 1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고종(광무황제)에 의해 황제국이 선포된 후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만들어졌으며,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내부에는 접견실과 대식당, 침실, 서재 등을 갖추었습니다. 신고전주의 양식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건축물을 모방한 양식으로, 엄격한 비례와 균형, 대칭의 질서와 조화를 추구합니다.
석조전은 지층, 1층, 2층 총 3개 층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지층은 시종의 공간이었고, 1층에는 접견실과 대식당이 있어 황제가 대신 혹은 외국 사신을 만나거나 공식적인 의례를 수행하는 공간이었습니다. 2층에는 황제와 황후의 침실, 서재, 거실 등을 두어 황실 가족들의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었습니다.
1930년대 일제가 추진한 덕수궁 일대의 공원화 사업 당시 석조전이 미술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광복 직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회담 장소와 UN 한국임시위원회 사무실 등으로 활용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무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1950년대에는 다시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용도가 바뀌었고, 1973년부터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실이 되었습니다. 1992년 이후에는 문화재청 궁중유물전시관을 개관하여 조선 왕실의 문화재 및 궁중 유물을 전시・관리하였습니다.
문화재청은 1930년대 이후 훼손되었던 석조전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되찾고자 2009년부터 복원공사를 진행하였고, 2014년 10월에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을 개관하였습니다.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은 대한제국의 정치, 외교, 의례, 황실 생활사를 담은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준공 당시의 고증 사진 자료를 토대로 하여 국립고궁박물관과 창덕궁에서 보관하고 있던 당시 가구들을 원래 자리에 배치하여 황궁의 생활사를 재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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